[보도자료]'금목걸이 제국' 세운 하루살이 시계 수리공,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 이재호 이사장 (프리미엄조선_2015.10.31)

박주****
2020-02-13
조회수 2147


'금목걸이 제국' 세운 하루살이 시계 수리공,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 이재호 이사장
가난 이기려 시계수리점 취직… 두 번의 도난으로 전 재산 날려, 골드바 사업으로 국내서 대박 "나도 남도 행복해야 성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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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조선, 20151031



"내일 아침까지 살아있느냐, 그게 문제였지요." 셰익스피어 작(作) '햄릿' 주인공의 대사(臺詞) 같은 삶을 이재호(李再浩·73)는 실제로 살아왔다. 그가 태어나던 해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했다. 어머니는 4남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온종일 밖으로 나섰다.

"배고파 울다 지치면 자고…. 온종일 그랬대요. 보다 못한 열여섯 살 위 큰누님이 절 업고 나섰어요. 마을을 돌며 '동냥젖'을 얻어먹고 연명(延命)했습니다. 하루 세끼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그런 집안이었으니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지요." 가난했지만 어릴 적부터 이재호의 '손'은 고향 경북 경주 근방에서 유명했다. 팽이·활·스케이트 같은 것이 그가 손대면 뚝딱 만들어졌다.

열아홉 되던 해 그는 울산으로 갔다. 잡화점에서 몇 달 점원 생활을 하다 기술을 배우려 시계수리점에 취직했다. 시계포 주인은 그에게 "벽시계를 뜯어 조립해보라"고 했다. 눈썰미 좋은 이재호가 뚝딱하자 주인이 놀라 말했다. "니 거짓말했제? 이 정도 해내려면 1년은 배워야 하는데?" 1963년 마침내 이재호는 '신시당(信時堂)'이라는 소매점을냈다.

처음에 시계 4개로 시작했던 게 얼마 뒤 70개로 늘어났다. 재산이 불었다는 뜻이다. 그는 영업이 끝나면 시계 70개를 직접 만든 나무 박스에 넣고 그 위에서 잤다. 전 재산을 깔고 자니 얼마나 단꿈을 꾸었을까마는, 어느 날 상상도 못 할 일이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시계가 몽땅 사라져버린 것이다. 도둑은 시계뿐 아니라 옷과 신발까지 가져갔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핀잔만 받았다. "얼마나 미련하면 그렇게 털어갈 때까지 세상 모르고 잘 수 있어요?" 이재호는 처음처럼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이재호 리 골드 회장은 200억원을 들여 월곡 주얼리산업연구소라는 인재 양성 재단도 설립했다


시골 형님이 준 송아지 한 마리로 재기해 시계가 50개로 불어날 무렵 이재호는 같은 수법으로 재산을 털렸다. 화불단행(禍不單行), 불행은 겹쳐서 온다는 말 그대로였다. "똑같은 일을 두 번 겪다니 참으로 부끄러웠지만 그때도 시골의 친척들이 도와주셨습니다." 두 차례 전 재산을 앗아간 울산을 떠나 부산에서 그는 '황금사'라는 새 간판을 내걸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지 그때부터 이재호에게는 자석처럼 돈이 붙었다. "집에서 묵히는 고금(古金)을 사들여 가공했는데 기막힌 타이밍이었지요."

1979년 오일쇼크가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활고에 시달린 주부들이 장롱 안에 있는 한두 돈짜리 금반지를 들고 금은방을 찾았으나 제값을 쳐주질 않았다. 이재호는 남다른 발상을 했다. 현장에서 얻은 정보 때문이었다. "부산의 번화가 광복동에서 부유층이 골드바(Bar)를 구한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당시 금 한 돈이 5만원이었는데 부자들은 '8만원까지 간다'며 금을 매집했어요." 그는 사정 급한 주부들이 들고온 금반지를 돈 있는 만큼 사들여 골드바로 가공해 팔았다. "제 신조가 '나도 남도 행복해야 성공'이라는 겁니다. 주부들도, 부자들도 행복해했지요. 1982년 제 재산이 100억원쯤 됐는데 남이 행복하니 저도 성공했잖습니까?" 시계와 금으로 우뚝 선 그는 '골드 체인(Chain)'으로 눈을 돌렸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 "당시 국내 골드 체인 시장의 70%를 이태리 업체가 장악했습니다. 우리 영세업체들은 함량도 엉터리고 디자인부터 촌스러웠으니까요. 배운 게 없어 영어 한마디 못했지만 이태리 밀라노 근처의 스키오란 곳으로 갔어요. 거기서 그들의 기술을 배웠지요."

그렇게 해서 세운 '리 골드(Lee Gold)'라는 골드 체인 회사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30%다. 디자인이 중시되는 고급 제품 분야에선 이태리산(産)을 제치고 부동의 1위다. 굶던 소년이 이제 국내외에서 유명한 '귀금속·주얼리 업계의 황제'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에 낸 세금이 700억쯤 됩니다. 그중 200억은 월곡(月谷)주얼리산업연구소라는 인재 양성 재단 설립에 썼고요. 저처럼 못 배운 사람이 이 정도 될 만큼 이 분야의 고용 창출력과 부가 가치가 높은데 아직도 백안시(白眼視)하는 게 안타깝지요." 그는 "정부가 불합리한 개별소비세제를 고치고 부가 가치세를 부과하는 쪽으로 양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세제론 연 50억밖에 세금을 못 걷어요. 우리 시장 규모가 6조(정부)~15조(업계 추산)나 되는데요. 업자들도 떳떳이 세금 내고 정부는 세수 올려 좋고 소비자도 당당하게 밀수 안 하고 제품을 사는 환경,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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